혹시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세요?
4학년을 앞둔 저 한준석은 2022년 11월, 같은 대학교 같은 학과 신입생 김주혁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저 한준석(18학번)은 김주혁(22학번)에게, 잔상체를 활용해 자신을 소개합니다.

Q1. 잔상체를 아시나요?

아니요, 전혀 몰라요. 한 번도 못 들어봤어요.

이겁니다.

아! 네. 일단 물방울 같고 뭔가 가로획이랑 세로획들이 다 분리돼있네요. 뭔가 약간 시각적인 장난을 치는 그런 폰트인가?하고 어렴풋이 생각이 들어요. 잔상체를 정확히 몰라도 괜찮나요?

네, 오히려 잔상체를 모르는 사람이어야 이 대화가 유의미해집니다. (나는 잔상체를 2018년부터 꾸준히 만들고 있다. 아마 현재까지는 잔상체를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1학년 겨울, 잔상체는 내가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을 두게 된 프로젝트로, 결국 사람들이 나를 타이포 인간이라고 인지하게 된 뿌리가 된다. 일정 시기 동안 나는 ‘잔상체’ 그 분이기도 했다.)

Q2. 잔상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일단 첫인상이 굉장히 좋았어요. 제가 봤을 때는 그래서 ‘재밌다’라고 단번에 느꼈습니다. 그리고 한눈에 읽히지 않다 보니까, 계속 ‘이게 뭐지?’ 싶어서 들여다봤는데요. 사실 너무 안 읽히는 것들 때문에 아, 이건 가독성 좋은 글자로 잘 기능하지는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선배님 작업을 평가질 하는 것처럼 보이려나요.

아뇨, 딱 콘셉트에 적합한 평가예요. 잔상체는 잘 읽히는 것보다 ‘어디까지부터 어디까지가 글자로 보이고, 읽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콘셉트가 독특한 글자입니다. (잔상체를 만들고 있으면 결국엔 기능하지 않을 글자를 그리고 있는 사실에 대해 가끔 회의감도 든다. 그렇지만 나는 잔상체가 연구의 측면에서 충분한 타당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Q3. 잔상체의 특성을 파악해주세요.

획수가 적은 글자는 잘 읽히네요. 네, 충분히 읽혀요. 그리고 획수가 많은 글자는 이 요소라고 해야 하나? 이 요소들이 복잡해져서 인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네요. 그리고 인상이 뭔가 한자 같기도 해요.

(맞다. 획수가 적으면 판단해야 할 요소가 적으므로 빨리 읽히는 한편, 획수가 일정 구간 이상 많아지면 요소끼리의 공간 분배 때문에 밀도가 높아지며 인지에 큰 영향을 준다.)

Q4. 웹에서 본 잔상체는 어때요?

너무 재밌어요. 이게 실제로 작용하는 폰트라는 게 놀랍네요. 홈페이지가 맨 처음에 로딩될 때 그냥 기본 서체 같은 걸로 떴다가 나중에 갑자기 잔상체로 바뀌길래 이거 그냥 이미지 아니고 폰트 파일 넣은 거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폰트를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 많은 글자를 다 그렸다는 게 경이로워요.

(웹에서 본 잔상은 지면에서 본 잔상과 사뭇 다르다. 글자의 형태가 만들 당시와 가장 흡사한(당연히 잉크의 번짐과 밀림 없이 깨끗하고 깔끔하게 출력된다.) 상태이므로 기분이 좋다.)

Q5. 이제 본인에게 가장 적합한 잔상체의 타이포그래피적 상태를 찾아 나가 볼 거예요. 먼저 크기부터!

네, 크기는 큰 게 좋은 것 같아요.

이 정도면 되겠어요?

아뇨, 훨씬 더 커야 할 것 같아요.

이렇게요?

네! 좋네요.

(작은 크기부터 큰 크기까지 연속적으로 나타내본 후 선택하도록 했다. 나는 잔상체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아주 작은 상태에서도 잘 보인다.)

오 그런데, 신기한 점이 하나 있어요. 너무 커졌을 때보다 아주 살짝 작아졌을 때 더 잘 읽히는 지점이 있네요.

네 맞아요. 음 제 생각에는 가장 커졌을 때는 한 글자씩 각각 읽어서 글자를 ‘낱자로’ 여기기 때문에 잘 읽히지만, 또 문장 단위에서는 잘 안 읽힐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 작아졌을 때 비로소 단어 단위가 되면서 ‘단어로’ 여길 수 있으며 문장을 읽는 것이 더 편해진 거죠.

Q6. 그럼 자간을 조절해 볼게요. (나는 잔상체의 자간은 매우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절된 요소들끼리 최소한 서로의 인지를 방해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저는 살짝만 넓어진 쪽이 좋은데요. 근데 너무 넓어져도 안 읽혀요.

그거 신기하네요, 저는 이것보다는 훨씬 넓혀주고 싶습니다.

Q7. 그럼 행간을 조절해 볼게요. (행간도 마찬가지로, 매우 넓혀줘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어쩌면 논리적이라기보단 본능에 따라, 넓혀줘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아, 이건 많이 넓혀주는 게 좋겠어요. 1.95배가 딱 적당하네요! 근데 웹의 판형 상 한 화면에 엄청나게 크게 글자가 들어가니깐 2배 이상 넓혀주면 눈이 피곤해지는 것 같아요. 확실히요.


Q8. 좋습니다. 이제 색깔을 정해볼게요. (여러 대조군을 미리 준비해 보여주었다. 잔상체의 색은 내 기준, 검정 바탕에 흰색으로 떴을 때 되게 아름다워 보인다.)

저는 회색이 가장 낫네요. 일단 배경은 흰색이어야 하고, 글자는 무채색인 게 읽기 가장 좋아요. 글자가 검은색이거나 회색일 때가 젤 좋은데, 특히 회색일 때 눈이 너무 편해요.


Q9. 이건 번외편으로, 잔상체에서 유난히 판독성이 안 좋은 것들을 골라보면 좋겠어요. (이것은 항상 재미있는 질문이다. 내 지인들에게 잔상체를 소개할 때면, 그들은 너무나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어떤 글자가 잘 안 읽히는지 알려주고 싶어한다. 그건 분명 잔상체의 원래 콘셉트와 의도가 잘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이라 기분이 좋다.)

우와 2,500글자를 이렇게 세세하게 보는 건 처음이네요. 저는,
꽉 궤 궷 껜 꾈 뗀 럇 뢨 맥 뷩 쉔 쐤 쬈 큉
이렇게 안읽혀요.


Q10. 잔상체에 대해 인터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인터뷰는 제 잔상체 프로젝트에 너무나 좋은 양분이 될 것 같아요. 끝으로 잔상체와 잔상체 인터뷰에 대해 느낀 점이나 하고 싶은 말 있나요?

일단 잔상체라는 신기한 폰트를 소개해주셔서 고맙고, 선배님을 항상 존경한다고 전하고 싶어요. 멋있네요! 신기한 게 하나 있는데요. 제가 오늘 처음 잔상체를 본 몇 시간 전에 비하면 지금 잔상체를 계속 보다 보니까 그런지 잔상체가 너무 잘 읽히고 있어요. 훈련이 됐나 봐요. 인간의 인지라는 게 참 재밌네요. 그리고 인터뷰도 재밌었어요. 다음에 밥한 번 꼭 먹어요!

(웹에서 작동하는 잔상체로 인터뷰 실험을 해볼 수 있어서 참 유익했다. 잔상체는 앞으로도 놓지 않고 계속 진행해나가고 싶은 내 첫 글자체이다. 언젠간 여러분도 출시된 잔상체를 외부에서 보게 될지도?)